교회를 찾아오는 남녀 어린아이들을 중심으로 주일학교를 시작하였다.
늘어나는 교인들로 인해 벨 목사의 임시사택은 협소해져 광주 대대에서 훈련장 및 무기고로 사용하던 북문안의 빈터(북문안 사창골, 현 충장로 3가)를 구입하였다.
양림리 교인들의 정성어린 헌금 40달러와 선교사들의 헌금 50달러를 합하여 3월에 공사에 기초를 놓아 5월에 “ㄱ”자형 평면의 예배당(50평)을 건축하여 가을에 옮기게 되었다. 이 지역의 이름을 땨서 “북문안교회”라 불렀다. 광주지역교회는 벨 목사의 담당으로 벨 목사는 양림리교회의 초대 당회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1대 당회장(1904-1916) 유진 벨 목사]
“ㄱ”자형 예배당 북문안교회는 모서리 부분에 강단을 배치하여 설교자가 오른쪽 남자석과 왼쪽 여자석을 잘 볼 수 있었고 1910년대에는 600여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다. 교인들의 증가로 확장을 몇 차례하여 1910년에는 54평의 건물이 되었다.
교회가 안정되어 가자 북문 밖에서 교회에 참석하던 교인들이 분리해 나가 최흥종 장로를 목사로 하여 북문밖교회(현, 광주중앙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지하 1층은 사교실(식당)과 조리실, 지상 1층은 교육관, 유치원, 주일학교 및 여신도 사무실, 외부에 화장실 및 창고, 2층은 대예배실과 유아실, 당회실 겸 사무실로 사용되었는데, 대예배실은 중2층으로 구성되어 정면 중앙에 강단이 있고, 강단 왼쪽에 장로석(후에 성가대석), 중2층은 성가대석(후에 회중석)의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후 조금씩 성전의 모습이 더해져갔다.
1968년 6월에 교회학교 사무실을 목사님 사무실로 변경하였다.
1970년 5월부터 담돌 모으기 운동을 전개하여 7월초에 축석공사에 들어가 20여일 동안의 공사로 아름답게 정리하였다.
1974년 6월에 유치원 출입구를 교회건
100주년 행사준비위원회는 세 양림교회 100주년 연합찬양제, 양림동 성역화 작업, 양림교회 100년사 출판과 양림교회 가족사 발간, 국내외에 사는 양림교회 가족 초청, 교회 개척과 해외 선교 지원, 양리교회 100년사 사진 및 사료전시실 개관을 기획하였다.
12월 양림교회 99주년을 기념하여 [양림교회 100년사(1) 1904-1953]을 발간하였다. 세 양림교회(기장, 통합, 개혁)가 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출판하였다.